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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취지서
‘포양(包洋), 바다를 품는다.’
진취적인 기상이 있는 사람만이 드넓게 펼쳐지는 바다를 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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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파도를 이겨내면서 두려움 없이 나갈 수 있는 것은 그 깊숙한 곳에 자유와 평화의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깊고 드넓은 바다는 세상의 다름과 차이를 불문하고 그것을 하나로 품고 있습니다


장병준선생이 살아오셨던 삶은 포양(包洋) 그 자체였습니다. 


장병준선생은 일제하 신안 도서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대표적인 지식인이었지만 현실과 타협을 거부하고 민족운동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장산도에서 3․1 운동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통합 임시 정부의 모태가 되는 국민대표회의와 한성 정부 결성에 참여했고, 또 상해 임시 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러시아령 국민대표의회와 통합을 추진했으며, 독립운동 단체와 임시정부의 비밀 연락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또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아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운동의 기반을 넓히면서 3․1 운동 1주년을 기념하고 다시 전국적 봉기를 촉구하는 투쟁을 전개하다 옥고를 겪기도 했습니다.


행하는 주역이었으며, 국내에 들어와서도 서태석, 송내호 등 사회주의 운동가들과 연대하고 지역 신간회를 이끄는 주축이 되어 민족운동 3․1 운동 직후에는 임시정부로의 대통합을 실동의 통일을 이룬 통합의 지도자이기도 하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갈라진 나라의 통일을 위해 남과 북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였고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노구를 이끌고 앞장서는 등 민족통일과 우리 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개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그는 장산도라는 작은 섬에서 출발하여 목포, 서울, 도쿄, 상하이, 만주, 연해주까지20세기 초반의 동아시아 전역을 활동 무대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무대로 진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른 견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변방, 그 중에서도 섬 출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육지의 양반들이 기존의 문화와 연고지를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것에 비해, 바다를 길로 삼아야 했던 섬의 지식인들은 훨씬 자유롭게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다를 품는다


포양(包洋)’의 호는 그의 이런 민족운동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병준선생의 삶은 민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었습니다.’  ‘장병준선생이 걸어온 길은 ‘함께 가는’ 통합의 길이었습니다’  ‘장병준선생의 정신은 민주주의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민족과 국민에 대한 사랑과 헌신, 사회 통합 그리고 민주주의 정신은 지난 시기의, 흘러간 이념이 아닙니다. 사회 통합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이뤄내야 할 과제이며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치열한 싸움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더 나은 사회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버릴 수 있는 용기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한결같았던 장병준선생의 정신(精神),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지며 살아온 길은 지금 우리 세대가 필요로 하는 시대정신이고 삶의 좌표입니다.  우리가 장병준선생을 기리는 것은 우리 자신과 후대를 위하여 간절히 요청되는 일입니다. 이에 우리는 선생의 뜻과 삶의 발자취를 계승 발전시켜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밝혀줄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사단법인 장병준선생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자 합니다.


2014. 6. 21일



(사)장병준선생기념사업회 회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