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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양 장병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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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3년 인동장씨 송포공 진섭과 하동정씨사이에서 4형제(병준, 병상, 홍재, 홍염) 중 맏아들로 태어나다.


2. 고향 장산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목포에서 교육을 받은 후, 서울로 올라가 보성전문 학교를 거쳐 일본대학 법학과를 다녔다. 1917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주변의 동지들과 민족운동의 방향과 진로를 모색하였다.


3. 1919년 3.1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하여 고향 목포, 무안의 시위를 조직 하는 한편 3월 18일 선도적으로 고향 장산도에서 주민들의 만세시위를 실행하였다. 당일 장병준선생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연설 후 만세를 부르며 4시간여 동안 시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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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만세 시위 후 서울로 올라간 장병준선생은 1919년 4월23일 조직된 “대한 국민회 의” 에 참여하여 한성정부의 일원이 되었다.


5. 1919년 4월 30일~5월 13일 임시정부 의정원 4회 회의에서 한남수, 김철과 함께 전라도 대표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19년 5월부터 상해와 국내, 만주, 연해주를 연 결하면서 만주, 연해주일대의 독립운동조직을 상해임시정부로 통합하는 과업을 수 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1919년 가을 따렌에서 일제의 민정서에 체포되었으나 갖은 고문을 이겨내고 신분노출을 피함으로써 20일간의 구류 후 석방되었다.


6. 1919년 말부터 대한독립1주년 기념투쟁 준비, 1920년 2월부터는 문건, ‘대한독립일 주년 축하격문’제작, 개인조직망과 대한국민회 조직을 통해 유인물 배포하였다.


7. 1920년 3월 11일 체포 후 3년형을 받고 1922년 6월 가출옥될 때가지 서대문형무 소에서 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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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23년 형기 만료 후 목포에 거주, 장산도 학교설립추진과 하의도 농민운동, 암태 도 소작쟁의 지원, 지지활동을 하면서 목포, 무안지역의 서태석, 표성천, 박복영 등의 민족운동가들간의 네트워크 형성하는 한편 완도의 독립운동가 송내호 등과 독 립운동 비밀결사체를 조직하였다.


9. 지역 민족운동의 결속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해외에서의 민족유일당운동과 중국 의 반일 국공합작의 영향으로 1927년 국내에서 신간회가 결성됨에 따라 6월 신간 회 목포지회 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1928년 6월 28`29열린 복대표대회에 장병준선생은 목포지회, 장흥지회, 강진지회, 완도지회가 합동하여 형성한 목포구 대표로 참석, 중앙집행위원과 중앙검사위원을 선출하는 13인의 전형위원으로 집행부를 조직하는 역할을 하였다.


1930년 2월 목 포, 장성, 나주, 순천, 곡성의 신간회 간부 다수 체포 시 장병준선생도 목포대표로 체포되었다가 3월 7일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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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931년 신간회의 해소와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제의 본격적인 중국대륙침략과 국 내의 독립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민족운동 어려운 시기에 처해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변절하였다. 장병준선생은 좌절과 회한으로 고향 장산에 은거하면서 상해와 일본 등지를 수시로 왕래하며 장래를 준비하였다.


11.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무안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 광주에 주거를 마련 하고 한민당 전남도당 부위원장 선임.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광주지부 부지부장 선임 되는 한편 1946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선출, 한민당 광주지부장 선임되어 활 동하였다. 1948년 여순사건대책위원장에 선임되어 사건 수습에 진력하였다.


12. 1959년 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 선임되어 이승만 독재정권의 독주를 막는 데 전 념하다가 1960년 3.15부정선거규탄시위에 노구를 이끌고 앞장서는 등 민주화와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60년 4월혁명으로 변화된 정치정세는 장병준선생이 지향하던 통합적이고 개혁 적인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서 선생은 민주당으로 참의원선거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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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972년 3월 16일 세상을 떠나 3월 20일 ‘고 포양 장병준선생 사회장의위원회’에 의해 사회장으로 치러진 장례를 끝으로 영면의 길을 떠났다.


14. 대한민국은 그에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3년 대통령 표창, 1980년 건국포장 추서하였으며, 1990년 그에 공적을 더 높이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하였다.

1994년 광주광역시 지원동 묘소에서  고향인 신안군 장산면 대리 선영으로 이장되었다가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 419호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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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013년 신안군과 장병준선생 선양사업 협약을 맺고 생가를 기부체납하여 문화체 육관광부, 전라남도와 신안군이 함께 생가터에 장병준선생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으며 2014년 6월 21일 사단법인 장병준선생기념사업회를 창립하였다.